예란-도윤 관계로그
재활훈련 겸으로 썼는데 넘 오래걸렸네여 흑흑
뭐 여하간 제목 그대로 예란이랑 도윤이랑 마피아게임 이후에ㅇㅇㅇ...
뒤는 버들님 부탁해여...U/////U
“아아, 아쉽게 됐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예란은 도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페이지를 손에 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만 그녀는 굳이 미안하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애초에 먼저 들켜 죽은 건 도윤이니 미안해할 필요가 있을까.
“뭐, 어쩔 수 없죠.”
조금 기운 빠진 얼굴로 웃으며 대꾸하고는 있었으나 그 눈은 여전히 바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겠지.
도윤은 1라운드 게임부터 이미 꽤 여러 사람에게 빚을 지워놓았었으니 이번 게임의 페이지를 얻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터다. 김수하도 그렇지만, 안도윤도 꽤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 중 하나였다.
뭐, 여기서 가장 게으르고 태평한 사람은 자신일테지만.
권유라가 시작한 복수의 처음과 끝이 궁금하기야 하지만, 알아내지 못한다 해도 크게 지장은 없었다. 어차피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고 그녀가 돈을 갚은 이상 그 관계마저도 유지될 이유가 없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개인적인 관심일 뿐이다.
김수하야 그녀의 변호사니 그렇다 치자. 제 의뢰인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예란에게 협력을 제안할 정도의 다급한 처지이니 여기서 가장 바쁘게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이였다. 실제로 그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게임의 진행을 돕는 대가로 정보를 받고 있는 듯 하니 그로서는 딱히 손해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권유라에 대해 의뢰인 이상의 사적인 감정이 있든 없든 그거야 예란이 상관할 바도 아니고 관심도 없다.
그런데 안도윤은?
여기에 온 이상 이전의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건에 휘말려 들었던 당사자던가, 아니면 그때 당시의 누군가와 아는 사이라던가.
“흐응.”
예란은 테이블 위로 팔을 세워 턱을 괴고 가늘게 뜬 눈으로 도윤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예란 씨?”
“돌려 말하는 거 좋아하지 않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굴어?”
“.. 굳이 말해야 하나요?”
“말 못 할 이유라도 있어?”
“말이 많으면 약점이 되니까요. 그건 예란 씨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꽤 머리 쓰네.”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흥미가 생기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꽤 평범한 생활을 영위해왔을 청년치고는 처세가 좋다고 해야 할까.
“그럼 저도 묻죠. 예란 씨의 목적은 뭡니까?”
“...내 목적? 상금은 얻으면 좋고. 진실? 알면 좋지. 권유라가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 그 속사정을 알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상금도, 진실도 손에 넣지 못할 거라면 뭔가 재밌는 구경거리가 필요하거든. 그것뿐이야.”
“상금도, 진실도 필요 없다는 건가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의미. 나는 딱히 너나 다른 사람들처럼 절박한 건 아니니까 바꿔 말하자면 그 누구의 적도, 아군도 아니라는 의미지. 그러니까 얘기해봐. 이 누나가 들어줄게.”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려 웃으며 그녀는 도윤을 재촉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니 딱히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바꿔 말하면 누구의 적이라도, 누구의 아군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 아닌가요? 뭐, 좋아요. 제 목표는 단 하나. 진실입니다. 지난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니까, 감춰져 있는 게 있다면 알고 싶은 겁니다.”
“지난 사건에 대한 내용을 알면서도 거기에 갈증을 느낀다면 단순히 가십거리에 관심 두는 어린애는 아닐 테고, 역시 관계자인거야?”
“...그 사건을 겪었던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수상한 데까지 기어 들어온 걸 보면 알기만 하는 사이는 아닌 것 같네. 예를 들면 연인- 이라던가?”
“그건 아닙니다.”
도윤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는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감정을 자각하지 못하는 그런 류일까.
어떤 것이 되었든 그와 그 누군가가 평범한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예란은 단정지었다. 어차피 연인이건, 그 무엇이건 도윤이 저렇게나 절박하다는 것은 그 상대의 신변이 결코 좋은 상태는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기야 그런 사건을 겪었다면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
“그 애가 그곳에 있었어요. 원래도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을 기점으로 너무나 많이 변해버려서.. 그러니까 저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알아내고 싶은 겁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무거운 말이야. 자신을 버려서라도- 즉 ‘희생’이 전제된다는 말이니까. 어때? 도윤 씨는 그런 거야? 그 애를 위해서 어떤 희생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어?”
“가족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란 씨는, 가족이 누군가에 의해 죽어 버린다면 ‘그를 위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나요?”
일부러 한껏 눈에 힘을 주며 노려보듯, 도윤을 쳐다보며 그를 헤집으려 도발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예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쳐오며 되물었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니? 희생은 지겨울 만큼 했단다. 잃을 것도 없었는데 잃을 만큼 잃고, 여기까지 왔지. 그러니까 도윤 씨의 절박함에 더 관심이 가. 흥미 있다고 하면 화내려나?”
“별로 기분 좋은 단어는 아니네요. 전 정말 절실하니까.”
“안도윤 씨는 저기 변호사 양반하고는 또 다른 의미로 마음에 드는데. 어때? 손잡지 않을래?”
"저는 예란 씨가 원하는 것은 드리지 못할 텐데요. 저와 거래를 하는 것도 껄끄러워하셨던 분이 지금 협력을 제안하시는 겁니까?"
"협력이라고 하기엔, 나 별로 가진 게 없어서. 힌트 페이지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포인트를 많이 쌓은 것도 아니고. '동행'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서로를 적으로 돌리지만 말자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뭐, 나한테 잘 해주면 여길 나가고 나서 취직하는 데 도움이라도 줄지 모르잖아?"
반쯤은 농담처럼 생긋 웃으며 던져 보았다.
어차피 그가 허락하는 것과 별개로 '구경'을 빙자한 관찰을 할 셈이었다. 굳이 이유를 갖다 붙이자면 순위권에서 멀어진 이상, 느긋하게 이곳에 모인 이들이 하는 모양새나 적당히 구경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는 쪽이 맞을 게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는 진실을 감추고자 하는 자와 필연적으로 맞서게 될 테고, 지금 이 장소에는 충분히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돈이야 평생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만큼은 가지고 있고, 진실이야 여차하면 나가서 백선교 내부를 수소문해보면 될 테지.
이도 저도 제대로 건질 수 없다면 적당히 보기 드문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딱히 너한테 손해가 돌아갈 제안은 아닌데,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