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돌아온 마피아 역할인 탓에 의심받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김송화가 집요하게 달라붙어오는 것에 짜증이 났다.
나름 머리를 쓰겠다고- 라기보다는 정황상 어쩔 수 없이 같은 편이었던 안도윤을 지목해 팀킬에 일조한 이상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이겨야했다.
마피아 게임은 15년쯤 전, 아직 평범한 학생이었던 무렵 친구들과 몇 번 해본 일은 있었지만 그다지 잘하는 축은 못되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성 싶냐마는. 그때보다 더욱 까다로운 것은 마피아가 시민 역할의 사람을 지목해 죽인다 하더라도 이 게임에서는 그들도 추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래서야 마피아로서 김송화를 제거한다 해도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으니 의심만 증폭시킬 뿐이었다.
차라리 정말 죽여 버리면 입이라도 다물게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야.
자연스럽고도 생생하게, 지금까지 다수결로 사망 처리된 사람들이 피를 흩뿌리며 죽어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차피 그런 장면이야 한두 번 봤던 것도 아니니 딱히 정신건강에 좋다 좋지 않다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망상을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게임테이블 위로 돌아왔다.
아무리 밀폐된 공간에서 니코틴 없이 애들 하는 게임에서 몇 번 졌기로서니 평정을 잃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천하의 강예란이 이런데서 이성을 잃어서야 안 되지.
“제가 강예란 씨를 마피아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정도입니다. 예란 씨, 이제 그만 다이하시죠.”
안경 너머로 비치는 까만 눈동자의 날카로움은 제법 쓸 만한 것이다.
게다가, 예란은 제 속을 숨기는 것엔 그다지 재능이 없었다. 오히려 진심을 가득 담아 공갈협박하는 쪽이 더 취향에 맞았다. 예로부터 악마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고 순순히 내가 마피아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러니까,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믿을래요, 김송화 씨? 1라운드부터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전부 의심받는 것도 지긋지긋하거든? 아무리 내가 나쁜 사람 같아보여도- 그래, 범법자기는 한데 매드해터가 그렇게 뻔 한 답을 냈겠어? 다시 말하지만 난 아니에요. 난 오히려 시아 씨가 의심스러운걸?”
화살을 돌려, 검은 세라복을 입은 묘한 분위기의 아가씨를 몰았다. 애초에 그녀도 마피아로 뽑힌 적은 없었으니까.
이쯤이면 매드해터인지 뭔지가 자신을 엿 먹이기 위해 일부러 마지막 라운드에 마피아 역할을 넘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뻔 한 시나리오였다.
예란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백선교 내부에 척을 진 사람이 있었던가 생각해보았으나 도통 누구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한두 명이어야지. 백선교에서 자리 잡겠답시고 밀어내고 몰아낸 사람이 몇인데.
그나저나 지난 주사위 게임에서는 지지리도 운이 없던 여자가 이번 게임에선 그야말로 명탐정 김송화가 되어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의외로 감이 좋은 타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눈치가 빠르던가.
바깥에서 적이 된다면 꽤 귀찮아질 종류의 사람이다.
그러나, 김송화라는 인간은 자신이 사는 지하세계까지 굴러 떨어질 부류는 아니라고 예란은 판단했다. 지금까지 수없는 사람의 다양한 몰락을 봐온, 그리고 몰락하도록 만들어온 예란은 스스로 사람을 구별하는 눈이 나쁜 편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었다.